지난 달 2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당구여제' 김가영ⓒ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지난 달 2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당구여제' 김가영ⓒ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MHN 스포츠 인천, 권수연 기자) 경기에 대한 부담감을 한꺼풀 내려놓고 마주앉은 김가영(39, 신한금융투자)에게서는 마치 옆집 언니, 누나같은 인간미가 물씬 풍겼다. 

활기찬 얼굴로 인터뷰에 응한 '당구여제'는 가지고 있는 매력을 아낌없이 선보였다. 

■ '외유내강' 꿈꾸는 홀로서기 인생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혹시 그가 당구를 하지 않았다면 어떤 길이 어울릴지 궁금해졌다. 겸사겸사 취미와 함께 물어보았다. 

김가영은 "운동은 사실 다 좋아한다. 여름엔 수상스키를 좋아하고, 겨울에도 스키를 종종 다녔는데 이제는 추운게 싫어서 덜 가게 되더라, 나이가 들었나"며 웃었다. 그 외에도 스쿠버다이빙 등 물에서 이루어지는 운동을 특히 즐긴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꼼꼼한 전술전략으로 굴러가는 포켓볼을 제패한 그답게 정적이지만 전략이 필요한 스포츠를 선호했다. 볼링과 골프, 체스처럼 머리로 한두 수 앞을 계산하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종목과 궁합이 잘 맞는다고 했다. 

그는 물론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한다. 주로 어떤 책을 읽느냐고 물어보니 "심리학 책을 즐긴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가영은 "남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읽어보면 참 재밌고 공부도 많이 된다. 나는 주로 혼자 생활하고, 당구도 혼자 치다보니 멘탈이 약해질 때가 많은데 '어떻게 해야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자주한다. 외유내강 스타일을 모든 사람이 꿈꾸지 않나"라고 말했다. 동감이다.

■ 3쿠션에 대한 고민은 계속된다 

월드챔피언십 이후 인터뷰에서 김가영은 "경기 중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라고 밝힌 바 있었다. 우승에 대한 압박감이나 상대에 대한 의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김가영은 그 부분을 일축했다. 

그는 "시합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행동에 대한 루틴은 이미 굉장히 오랫동안 정해져있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이 별로 없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고민한 것은 공의 원리에 대한 부분이다. 이건 아직 내가 3쿠션을 잘 몰라서 생기는 문제다 주의해야 할 점이 많은데 그 부분이 아직 몸에 익지 않아서 그렇다. 그거에 대해 철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내 좋은 습관으로 가져올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김가영은 "포켓볼을 할 때는 내 스타일이 확고했고, 나 자신의 경기력에 대해 확실히 믿고있었다. 포켓볼을 칠 때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치는걸로 3등 안에 들었는데 3쿠션은 그렇게 칠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판단이 아직 느려서 안되는건지, 아니면 종목 특성상 빠르게 칠 수 없는건지 아직 확실하게 판단할 수가 없더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그의 플레이스타일은 앞으로도 계속 변하고 또 변할 예정이다. 김가영은 "물론 그걸(플레이스타일) 빨리 찾으면 좋겠지만 서두르진 않겠다. 개인적인 성향으로는 멋있고 시원시원한 플레이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가볍게 미소지었다. 

지난 달 2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당구여제' 김가영ⓒ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지난 달 2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당구여제' 김가영ⓒ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 "뱅크샷 좀 그만쳐라"던 아버지?

오늘의 김가영을 있게 한 것은 그의 능력도 있지만, 유도선수 출신으로 엄격했던 아버지의 몫도 무시할 수 없다. 아버지가 인천에서 당구장을 운영하며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큐를 잡게 된 것이다. 당구를 먼저 쳤고, 딸에게 치도록 권유했으니 충고나 지적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다.

월드챔피언십 우승 인터뷰 당시 김가영은 "아버지가 '뱅크샷 좀 그만쳐라'라고 말씀하셨다"는 소감으로 웃음을 자아낸 바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김가영은 "뱅크샷이라는게 굉장히 공격적인 전술이다. 기본적으로 3쿠션은 공격과 수비가 겸비되어야한다"며 "하지만 뱅크샷을 치면 공수 겸비가 매우 어렵다. 쳤다가 안되면 다른 선수에게 공이 돌아가버리지 않나, 말하자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뱅크샷은 대회 중 한두번 정도는 괜찮고, 분명히 도전할 가치가 있는 전술이다. 그런데 난 별로 안 쳤다고 생각하는데 아버지 눈에는 너무 많이 치는걸로 보이시나보다. 나이 마흔이 되어도 아버지의 잔소리는 계속된다"며 쾌활한 대답을 내놓았다. 김가영은 월드챔피언십 결승전 기준으로 통산 95개의 뱅크샷을 성공시켰다. 

■ '여제' 타이틀 부담? 그런건 없다!

그를 설명할 때 마치 이름처럼 붙는 별명이 있다. 여왕 혹은 여제(女帝)다. '당구여제'하면 국내 선수 중에서는 자연스럽게 김가영을 먼저 떠올릴 정도로 익숙하다. 혹시 '이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라고 물어봤더니 단번에 "그런건 전혀 없고, 오히려 좋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사실 포켓볼에서의 '여왕' 타이틀까지 센다면 아주 어릴 적부터 좀처럼 왕관을 벗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3쿠션에서의 느낌은 조금 달랐다. 그는 "3쿠션의 '여왕' 타이틀은 동기를 부여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왕관을 쓰기 위해선 무게를 견뎌야 하지만, 무게만큼의 위엄과 자신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김가영은 "내 나잇대 선수들 중에는 사실상 내가 타이틀이 가장 많은 편이고, 그런 타이틀에 심리적으로 위축되기보다는 '감사하게 받아들여도 좋다'고 생각하며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 달 2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당구여제' 김가영ⓒ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지난 달 2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당구여제' 김가영ⓒ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너무너무 조용한 우리 팀, 그래도 화이팅

어느새 시즌이 돌아 프로당구 PBA의 팀리그가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 시기에 들어가면 선수들은 팀리그 전반기와 챔피언십, 그리고 다시 후반기 팀리그까지 쉴 새 없이 달려야한다. 

'일정이 타이트하니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김가영은 의외로 이 부분에선 고개를 저었다. 그는 "팀리그를 치르게 되면 11점제 2세트와 복식, 여자경기는 실질적으로 두 게임이 있다. 실제로 나가보면 뛰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다"고 입을 열었다. 

당구는 배구, 농구, 탁구 등 다른 구기 종목과는 다르게 온 몸으로 뛰는 경기가 아니기에 신체적으로 힘든 스포츠라고 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여자 선수들은 출전 시간이 매우 짧다. 그렇기에 잠깐의 순간, 가지고 있는 전부를 보여줘야한다. 여성 선수들이 나선 2세트에서 전반적인 게임 분위기가 결정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집중력을 이 순간 남김없이 발휘하기 때문이다. 

팀에 대한 얘기도 곁들여졌다. 김가영은 "덧붙여 말하자면 우리 팀(신한금융투자)은 화이팅이 없다고 오해를 자주 사는 편이다"라고 말을 보탰다. 그는 "내가 경기 중에는 무표정이라 그런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사실 우리 팀은 크게 리액션이 있는 팀이 아니다. 지나 이기나 한결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다른 팀들은 열정적으로 나서기도 하는데 우리 팀은 팀원들이 대체로 다 조용하다. 심지어 다 같이 모여서 재밌는 얘기를 해도 옆사람에게만 들리는 수준이다, 그럼 혼자 일단 웃고 다 들리게 얘기 좀 하라고 핀잔도 준다"라고 대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번에 꼭 우승가자!" 호쾌한 각오는 덤으로 따라붙었다.

■ 늘 지켜보고 있는 팬들에게 한 마디?

다시 시즌을 기다리고 있는 팬들에게 인사를 부탁했다. 사실 선수로서는 '열심히 할테니 지켜봐달라'는 말이 최선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김가영은 또 한번의 성장을 약속했다.

그는 "사실 3쿠션 선수로서는 '제 경기는 늘 재밌을테니 믿고 보시라'는 말을 당당히 하기엔 아직 부끄럽다. 남자 선수들도 뛰어난 분들이 많고 제 경기를 얼마나 재밌게 봐주실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난 3년간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렸다. 그 부분만큼은 자신있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올해도 작년과 다르게 성장한 3쿠션 선수 김가영을 보실 수 있을것이다, 아직까지는 믿고보는 선수라고 확답은 못 드리지만 '저 선수는 대체 어떤 플레이를 선보일까?' 궁금해지는 경기를 선보이고 기대감을 심어드리고 싶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