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런의 시시콜콜 당구>⑧ “맞수가 올리면 나도” 자존심 싸움에 ‘점수 인플레’ 성급히 올린 뒤 승률 급락하자 ‘점수 원위치’ 수모 올린 점수에 걸맞은 큐질 보여주려 진지해지기도 애버리지 높은데도 안올리면 기피 대상으로 전락
필자가 다니는 콘테이너클럽 동호인 친선대회 모습.
[MK빌리어드뉴스 진성기 편집위원 / 당구칼럼니스트] 얼마 전 일이다. 21점을 놓는 A씨가 느닷없이 22점으로 올린다고 선언했다. 승률이 높아져 자신감을 얻었나 보다 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보다 실력이 뒤지는 정아무개씨(21점)와 같은 점수를 놓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에 실속파인 정아무개 씨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또 다른 21점 B씨가 발끈했다. “A씨가 올리면 제가 22점을 못 놓을 이유가 없지요.” 결국 A씨와 B씨는 동시에 22점으로 핸디를 조정했다.
며칠 뒤엔 22점을 놓는 C씨도 점수 상향조정을 감행했다. 그의 3쿠션 당구 인생에서 몇 차례 경험하지 못한 애버리지 1점을 최근 잇달아 찍으면서 기세가 오르자 23점으로 올린 것. 그러면서 D씨(22점)를 유혹했다. “내가 올렸으니 나보다 애버리지가 높은 당신도 올리면 어떤가.” D씨는 C씨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3쿠션 당구 동호인들이 지닌 꿈과 욕망을 드러내주는 장면이다. 동호인들이 품고 있는 욕망의 꼭대기에는 ‘점수 레벨업’이 자리 잡고 있다. 20점대 초반이라면 25점을, 10점대 후반은 20점을 1차 목표로 삼고 호시탐탐 레벨업을 노린다. 점수는 곧 실력과 위상을 나타내므로 자연스런 현상이다.
점수 레벨업을 하려면 전제돼야 할 게 있다. 바로 애버리지 상승이다. 애버리지가 일정한 수준에 올라줘야 그에 맞춰 점수를 올리게 된다. 직장인이 인사고과에서 일정 수준 이상 평가를 받아야 승진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야구의 타율과 비슷한 개념인 애버리지는 이닝 당 득점을 뜻한다. 한번 타석에서 몇 점 치는 지를 나타낸다. 1이닝에 1점을 치면 1.000, 2이닝에 1점을 치면 0.500, 3이닝에 2점을 치면 0.667이 된다. 25점을 놓는 동호인이 40이닝에 경기를 끝냈다면 애버리지는 0.625를 기록하게 된다.
디지털 스코어보드 업체 빌리보드 회원 통계(3월31일 기준)를 보면 35점의 평균 애버리지는 1.043, 30점은 0.801이다. 또한 27점은 0.662, 25점은 0.566, 22점은 0.448로 집계된다. 이는 점수 별로 수백 명 혹은 수천 명이 최근 60일간 치른 게임의 애버리지 평균치다. 따라서 이를 기준 삼아 자기 점수를 조정하면 얼추 맞다.
동호인들은 보통 최근 1~2개월 평균 애버리지를 토대로 점수를 조정한다. 이 기간에 애버리지가 뚜렷이 오르면 레벨업을 시도한다. 평균 애버리지 0.600을 기록하던 25점 동호인이 최근 치른 30게임에서 애버리지 0.650을 돌파했다면 26점이나 27점으로 올리는 식이다.
물론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자존심 싸움이 점수를 밀어 올리기도 한다. 맞수가 점수를 올리자 덩달아 올리거나, 본인보다 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같은 점수를 놓는 게 마뜩잖아 올린다. 친구 사이에 혹은 경쟁 관계에서 이따금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애버리지는 뒷전으로 밀려난 채 점수가 올라가는 ‘점수 인플레’가 나타나는 셈이다. 앞서 언급한 A씨와 B씨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점수 레벨업은 고점자보다는 저점자에게 더 간절한 바람이다. 10점대 후반은 서둘러 20점에 올라서고자 하고, 20점대 초반은 25점을 찍고 싶어 한다. 특히 1점 상향조정이 ‘신분 상승’으로 직결될 수 있어 더욱 그렇다.
필자가 속한 동호회에선 1~5부로 나눠 스카치 방식 복식대회를 진행하곤 한다. 30점 이상은 1부, 26~29점은 2부, 23~25점은 3부, 20~22점은 4부, 20점 미만은 5부로 분류한 뒤 ‘2명 합계 6부 이상’이라는 참가 조건을 내건다. 이는 고점자끼리 한 편이 되는 것을 막아 저점자들도 본선에 오를 기회의 폭을 넓히는 효과를 낸다.
이 같은 분류에 따라 26점과 25점, 23점과 22점, 20점과 19점은 각각 부가 다르다. 점수 차이는 겨우 1점인데 그룹이 갈리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 이를 근거로 3부에 배정된 필자(23점)는 4부에 속한 20~22점 친구들을 향해 “마이너리그 애들은 저쪽에서 놀아라”며 놀리곤 한다. 그러니 20~22점은 23점으로 올리고 싶은 욕망에 실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구조가 형성된다.
표=MK빌리어드뉴스
점수 레벨업 이후엔 어떤 일이 펼쳐질까. 등급이 높아진 만큼 내심 더 멋진 기량을 뽐내려고 한다. 이를 위해 더욱 진지한 자세로 경기에 임하고 정성껏 큐질을 하게 된다. 이는 더 좋은 애버리지와 승률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레벨업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해 한동안 고난의 시기를 겪는 일이 흔하다.
최근 28점에서 30점으로 올린 E씨는 “30점이 도대체 뭐라고, 28점 시절엔 있는 그대로 큐질을 했는데 지금은 30점에 어울리는 샷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고 했다.
레벨업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흔하다. 그중에서도 F씨 사례는 극명하다. 25점을 놓던 그는 지난해 한때 0.650 이상 애버리지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기세가 오르고 자신감이 넘치자 한꺼번에 2점을 올렸다. 그런데 웬걸, 의욕이 너무 앞섰던 것일까. 이후 높은 ‘벽’에 막혀 승률과 애버리지가 급전직하했다. 스트로크는 흔들렸고 스트레스는 쌓여 갔다. 결국 1개월만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25점으로 ‘원위치’하는 수모를 겪었고 지금도 25점을 놓고 있다.
필자의 경우 애버리지 0.530에 도달한 지난해 설 명절에 23점으로 올렸다. 하지만 1년이 넘은 지금 애버리지는 오히려 0.515로 내려앉았고 승률은 40%대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 24점으로 올리는 건 당분간 먼 미래의 일로 남겨둘 수 밖에 없다. 더불어 매년 한 점씩 올리겠다는 목표 달성도 사실상 물건너갔다.
정작 점수 조정이 필요한데도 꿈쩍 않는 동호인들도 있다. 이른바 ‘소금당구’와 ‘물당구’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다.
‘소금’은 실력에 비해 점수를 낮게 놓아 승률이 높다. 게임비를 상대적으로 덜 낸다는 얘기다. 이런 사람은 비용 절감에 집착하는 ‘생계형’ 혹은 ‘구두쇠’라는 평가를 듣게 된다. 점수를 올려야 마땅한데 요지부동하니 자칫 기피 대상이 된다.
‘물’은 점수에 걸맞은 실력을 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점수를 과하게 놓았으니 대체로 승률이 낮다. ‘보약’ 혹은 ‘도시락’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강동궁은 지난 3월초 열린 PBA투어 왕중왕전(SK렌터카배 월드챔피언십) 조별예선 모랄레스와 경기서 애버리지 2.636을 기록하며 `웰뱅톱랭킹`을 수상했다.
이런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3쿠션 당구는 세상살이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신분 상승을 꿈꾸고, 과한 욕망을 드러내고, 별것도 아닌 걸로 자존심 싸움을 벌인다. 잇속을 너무 따져 얄미운 이가 있는 반면 게임에 이기면 좋고 져도 상관없는 듯 달관적 자세를 가진 이도 있다. 이런 다양한 모습이 어우러져 오늘도 당구판이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