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복귀 2년만에 LPBA ‘크라운해태 챔피언십’ 준우승 2006년 박지현 등과 최초 女3쿠션 선수 등록 2009년 국내 1위…세계여자3쿠션 선수권 공동3위 건강 악화로 4년간 공백…지난해 LPBA서 새 출발 “우승 상금타서 부모님께 효도해드려야죠” “마지막까지 ‘프로당구선수 박수아’로 기억됐으면”
LPBA 크라운해태 챔피언십 2021 준우승자 박수아가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MK빌리어드뉴스 박상훈 기자] “당구를 그만뒀던 4년은 인생에서 가장 황폐했던 시간이었어요. 선수로 새 출발한 PBA에서 꼭 우승해 ‘프로당구선수 박수아’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불과 10여년 전 박수아는 국내 1위는 물론 세계무대에서도 테레사 클롬펜하우어(네덜란드), 히다 오리에(일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한국 여자 3쿠션 ‘간판스타’였다.
2015년 이후 건강악화로 4년의 공백기를 가진 그는 당구를 완전히 그만둘 생각까지 했으나, 2019년 PBA 출범과 함께 프로당구선수로 다시 당구판으로 돌아왔다.
필라테스를 통해 어깨 부상을 회복하고, 공을 다시 배우며 도전한 프로 무대 첫 시즌(19-20) 결과는 랭킹 25위. 8강 진출이 최고 기록이었다. 과거 명성에 비하면 다소 초라한 성적표였다. 그러나 ‘후원사 패치 없이 최초로 우승하는 선수가 되겠다’는 다짐을 떠올리며 연습에 매진했다.
꾸준한 연습의 결과일까. 이번 시즌(20-21) LPBA 4차전(크라운해태 챔피언십)서 박수아는 자신의 최고 기록인 8강을 뛰어넘어 4강, 결승까지 진출했다. 준우승에 그쳤으나 환한 미소로 우승자 이미래를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결승전 일주일 뒤 대회가 열린 서울 강서구 메이필드호텔에서 박수아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박수아는 LPBA 크라운해태 챔피언십서 자신의 최고 기록인 8강을 뛰어넘어 4강,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준우승 축하한다.
=정말 기쁘다. 가족들, 오래전부터 응원해준 팬들이 축하해주셨다. 결승전 때 랜선응원에도 참여해준 이철호 부산 칼새빌리어드 사장님과 회원님들은 연습장에 준우승 축하 현수막도 걸어주고 꽃다발도 전해주셨다.
▲결승전을 앞두고 가족들은 어떤 응원을 해줬나.
=준결승 때 화장을 너무 안하고 가서 미용실에 가야 한다고 그랬더니 엄마는 경기에만 열중하라고 하시더라. 그런데 내 생각은 좀 달랐다. 물론 경기를 열심히 하는 건 기본이다. 그런데 ‘프로선수’는 보여지는 직업이지 않나. 지금도 인터뷰 하기 위해서 꾸미고 왔다. 사실 부산 연습장에서 내 모습은 이렇지 않다. 하하. 프로라면 팬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반듯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LPBA 준결승전은 정말 대단한 무대 아닌가. 그런 자리에 너무 편한 모습으로 나간게 아닌가싶다.
국내 여자 3쿠션 1호 선수 중 한명인 박수아는 국내 랭킹 1위는 물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결승전 끝난 뒤에는 부모님께서 뭐라고 하시던가.
=그냥 많이 좋아하셨다. 당구를 쉬면서 힘들어했던 과정을 다 아는 분들이니까. 장내 아나운서가 혹시 우승하면 상금을 어디에 쓸 거냐고 물어보셔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겠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엄마한테 했더니 금액을 떠나 그냥 그 자체로 기뻐하시더라. 준우승 해서 줄긴했지만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다.
▲PBA 결승 진출은 처음이었는데 떨리지 않았나.
=결승전보다 오히려 준결승이 더 떨렸다. 경기가 TV 생중계 된다는 걸 그날 현장에서 알았다. 또 그전 최고 성적이 8강이었는데 그 성적을 넘어선 경기이기도 했고, 상대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그런데 그 선수가 우승을 세 번이나 한 임정숙 프로를 꺾고 올라왔다는 거 아닌가. 오래전 아마추어 시절부터 알던 선수들과 만날 땐 떨리지 않는다. 그런데 준결승에서 만난 김은빈 선수 같은 신예 선수들은 상대에 대한 정보가 없고 실력을 잘 알지 못해 더 떨린다.
박수아에게 연습장을 제공한 칼새빌리어드 부산공방 이철호 대표가 박수아의 준우승을 축하하며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사진=박수아 제공)
▲대회 준비는 어떻게 했나. 코로나19로 당구장에서 연습하기도 어려웠을 텐데.
=부산 칼새빌리어드공방에 테이블이 있어 연습할 수 있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사장님이 연습에만 매진할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부산에서 서울 대회장까지 오가는 것도 힘들었겠다.
=아무래도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이 있다. 경비가 부담스러워 하루 전에 올라와서 경기를 치른 적 있는데 컨디션 조절에 완전히 실패했다. 일주일 전에 와서 준비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 2~3일 전에 올라와서 준비한다. 예전에는 대회장 근처 모텔에서 숙박하며 경기를 준비했는데 3차전(농협카드 챔피언십) 때부터는 대회가 열리는 호텔에서 투숙했다. 그랬더니 확실히 컨디션이 좋더라. 그래서 이번에도 ‘큰일을 하려면 돈을 좀 써야지’ 하는 마음으로 호텔에서 투숙하며 경기를 준비했다.
▲당구 입문은 언제였나.
=98년이다. 내가 98학번인데 대학교(부경대 법학과)에 들어가 동네 당구장에서 선배들과 어울리며 당구를 처음 접했다. 동호인으로 당구를 즐기다가 2006년에 당구연맹에서 여자3쿠션 선수를 모집하길래 선수로 등록했다. 그때 박지현 오지현 정은영 등 10여 명이 연맹에 찾아가 등록했다. 그 멤버들이 한국 여자 3쿠션 1호 선수였다. 성적을 잘 낼 때도 있고 못 낼 때도 있었지만 스스로 여자 3쿠션 선수 자리를 지키고 이어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아무래도 생계가 보장되지 않으니 중간에 그만두는 선수들이 많았다.
박수아가 어머니 문순덕 씨, 아버지 박삼석 씨와 선수 생활 중 받은 트로피, 메달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박수아 제공)
▲부모님은 당구선수 길을 반대하지 않았나.
=부모님께선 엉뚱한 길로 빠지게 됐으니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렇지만 어떤 선택을 해도 늘 묵묵히 지켜봐 주셨다. 당구는 선수 등록 후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뒤로 더 응원해주셨다. 부모님께는 늘 죄송하고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다.
▲2009년 국내 여자3쿠션 랭킹 1위, 제3회 여자3쿠션 세계선수권대회 공동3위 등 좋은 성적을 냈다.
=사실 동네 당구로 시작했고, 아마추어 시합에 나가 입상하면서 이름을 조금씩 알리고 얼떨결에 선수가 됐다. 그러다 보니 정작 운동선수로서의 마음가짐이나 자세가 부족했다. 당시 경험이 운동선수로서 지금의 나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 대표로 세계무대에 나가 정상급 선수인 테레사 클롬펜하우어, 히다 오리에 등과 소통하며 운동선수가 지녀야 할 자세를 배우며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
▲그 선수들과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나.
=미국 버호벤 3쿠션오픈대회에 초청을 받았을 때였다. 출국 1주일 전에 차 문에 부딪혀 손가락이 골절됐는데 깁스를 하면 당구를 못치지 않나. 그래서 붕대만 감고 무작정 비행기를 탔다. 의사가 시간이 지나면 더 위험하다고 말렸는데, 대회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언제 또 초청을 받겠나 싶었다. 미국에 도착해 경기하는데 경기가 정말 잘 풀리는 거다. 당시 세계랭킹 1위 히다 오리에 선수가 “정말 손가락 부러진 거 맞나? 왜 이렇게 잘해?”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하하. 3위라는 좋은 성적으로 마치고 다행히 부러진 뼈도 잘 붙었다.
과거 선수로 활발히 활동하며 세계 여자 3쿠션 톱랭커 히다 오리에, 테레사클롬펜하우어와 어깨를 나란히 한 박수아.(사진=박수아 제공)
▲2015년부터 약 4년간은 당구선수 박수아의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고 몸도 좋지 않아 당구를 칠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이 지친 데다 좋아하는 당구도 못 치니 인생에서 가장 황폐했던 시간이었다.
▲당구를 쉴 땐 어떻게 지냈나.
=아예 당구를 그만둘 생각으로 미용 일을 배웠다. 배우면서 소질이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주변에서 개인 가게를 차리고 수입이 좋아지면 당구 할 생각도 안 날 거라고들 하더라. 정말 가게를 낼 생각까지 했는데 계속 당구 치고 싶은 마음이 떠나질 않더라. 그래서 필라테스를 통해 건강도 되찾고 신체학, 운동학, 근육학을 공부했고 당구이론도 다시 배웠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과거를 탓하기보다는 어두운 시간은 다 지나갔다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리고 지금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당구를 업으로 삼고 있으니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PBA 출범과 함께 당구선수로 복귀했다.
=스스로 예전 기량이 당장 나올 수 없다는 걸 알아서 고민이 많았다. 선수활동 안할 때도 연맹선수로 등록은 해놓은 상태였는데 대회를 나가지 않으니 랭킹은 굉장히 낮았다. 선수로서 잃을 게 없는 상태였고, 연맹에서나 PBA에서나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한 단계씩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다시 일어서야 하는 거 상금이 더 큰 무대에서 일어서자는 마음으로 PBA에 도전했다.
준우승을 기념해 큐가방에 LPBA 크라운해태 챔피언십 대회 패치를 붙여놓은 박수아.
▲다시 도전한만큼 각오가 남다르겠다.
=프로선수니까 당연히 우승이다. 지금도 후원사가 없어서 옷에 패치가 없는데 최초로 후원사 패치 없이 우승하는 선수가 되보자고 다짐했었다. 후원은 늘 기다리고 있다. 하하.
▲PBA에서 인상적인 동료 선수가 있다면.
=김가영 프로다. 포켓볼에서 이미 정상에 섰고 3쿠션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 않나. 또 방송에서 비칠 때 외모나 자기관리도 철저하고 정말 ‘프로다운 프로’라고 생각한다. 김가영 프로를 보면서 나도 저런 자세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한다.
▲프로 선수 자세를 갖추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부분이 있나. 팬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부담도 있을 텐데.
=공백기를 거치며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단련된 부분이 있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기도 한데 침대에서 일어나면 바로 보이는 테이블에 붙여 놓은 문구가 있다. ‘외모도 1등 당구실력도 1등’ ‘부모님 감사합니다’ ‘연습만이 살길이다’ 사람이다 보니 항상 좋은 경기만 보여드릴 수는 없다. 부진한 경기 내용을 질타할 땐 프로니까 감수해야 한다. 컨디션 조절을 못하고 연습을 제대로 못한 건 결국은 내 탓이니까 받아들여야 한다. 앞으로 좋은 성적을 꾸준히 내야 하는데 바로 다음 대회에 우승하겠다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순 없다. 그렇지만 꾸준하게 좋은 경기,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건 확신할 수 있다.
▲경기는 즐기면서 하는 편인가.
=정말 예민한 편이라 경기를 잘 즐기지 못한다. 경기 결과가 좋고 우승한 경기여도 못 친 공이 있으면 스스로 자책하고 후회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다. 과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했을 때도 당시 사진을 보면 활짝 웃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번에 ‘LPBA 크라운해태 챔피언십’에서는 준우승을 했는데도 경기가 끝나고 활짝 웃고 있더라. 당구선수를 하면서 이번만큼 즐기면서 경기했던 적이 없다.
LPBA 크라운해태 챔피언십 2021 결승전서 이미래와 인사를 나누는 박수아.(사진=PBA)
▲이번 결승전이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가 있나.
=많이 내려놓았다고 해야 하나? 예전보다는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이미래 프로는 내가 쉬는 동안 꾸준히 당구를 쳤고, 그만큼 실력이 늘었다. 만약 이미래 프로가 그동안 실력이 늘지 않은 상태로 나와 경기하고 있었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거다. 정말 훌륭한 기량을 펼치면서 같이 경기를 하니 ‘이기면 좋은 거고 져도 후회 없는 경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구는 개인플레이다. 내가 아무리 잘 쳐도 상대방이 더 잘 치면 지는 거고, 내가 아무리 못 쳐도 상대방이 더 못 치면 내가 이긴다. (이)미래가 정말 잘 쳤다. 3세트 때부터는 앉아서 계속 박수를 보냈다. ‘이렇게 잘하는 사람과 같이 결승전 무대에 올랐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즐겁게 경기할 수 있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동료 선수는.
=(강)민구에게 공도 배우면서 친하게 지낸다. 우승하면 이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었는데 힘들 때마다 누나 안부를 물어주는 믿음직한 동생이고 존경하는 선수다. 강민구를 ‘한국의 야스퍼스’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만큼 착실하고 당구와 집밖에 모르는 연습벌레다. 그런 꾸준함이 지금의 강민구를 있게 하지 않았나 싶다.
▲공교롭게도 절친한 두 선수가 나란히 준우승을 차지했다. 결승 전에 응원은 주고받았나.
=매번 문자로 응원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번엔 안 보냈다. 본인이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어 나까지 경기 전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끝나고 우승하면 축하해 줘야지 하고 있었다. 결승전 후 전화가 와서는 “누나가 준우승하니까 나도 준우승 한 거 아니냐”고 농담하더라. 하하.
▲주위에 고마운 분들이 많다던데.
=결승전 때 응원해주신 분들께 인사를 전하고 싶다. 특히 그중에서도 오래전 선수 시절 모습을 기억하고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또 스승님이신 유재영 선수를 비롯해 김현우 선수, 스파링파트너 배정두 선수, 이근용 선수, 유니버설 박석준 사장님께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언제나 노심초사하며 매일 새벽기도 가셔서 딸 응원해주시는 부모님께 감사하다. 어릴 때는 집, 학교, 교회밖에 모르는 성실하고 착한 딸이었는데 지금까지 제대로 효도 한번 못하고 도움만 받고 있다. 부모님이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가셨는데 우승상금으로 부모님 여행 보내드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앞으로 목표는.
=다음 시즌에서는 꼭 우승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경기를 했으면 좋겠다. 설사 매번 지더라도 내가 연습한 것을 다 보여줄 수 있는 후회 없는 경기를 하고 싶다. 또 한 가지 꿈은 ‘프로선수 박수아’로 당구팬들에게 기억됐으면 한다. 아마 다시 정상까지 올라가도 계속 그 자리에만 있지는 못할 거다. 그래도 나중에 박수아라는 이름을 말했을 때 ‘당구 잘 치는 선수였지’ ‘상대하기 쉽지 않은 선수야’ 이 정도 소리는 들었으면 좋겠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힘이 됐던 말이 ‘예전엔 박수아 선수가 (이)미래를 이겼었는데. 박수아도 당구 잘 쳤지’라는 말이었다. 이렇게 기억해 주시는 게 감사하고 참 힘이 되더라. 늘 최고의 자리에만 있겠다는 욕심은 조금도 없다. 오랫동안 좋은 경기를 펼치는 선수로 남고 싶다. [hoonp777@mkbn.co.kr]